장유와 담배에 얽힌 전설 > 설화

본문 바로가기
설화

장유와 담배에 얽힌 전설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5 16:18

본문

●장유와 담배에 얽힌 전설
장유(張維)는 인조 때의 명신으로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溪谷)이었다. 그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롭게 자라났다. 24세 때(1612)에는 김직재(金直哉)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시흥시 장곡동 안골마을에 몸을 숨겨서 열두 해 동안이나 지냈다. 그는 이곳에서 살면서 딸을 낳았는데 이가 곧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그의 청춘시대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독차지했다. 벼슬이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렀고, 또는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서 신풍(新豊)이라는 봉군(封君)까지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다. 경학(經學)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문장에 막힐 것이 없었다. 그 밖에도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학(醫學), 병서(兵書), 복술(卜術) 등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꼿꼿한 나무는 부러지기가 쉽고, 예쁜 꽃은 꺾이기가 쉬운 것과 같이 사람도 장래성이 있는 자에게는 악착스러운 시련을 받는 일이 허다한 법이었다. 그도 그러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13세 때의 어릴 때에 그 아버지를 여의게 된 것도 한 시련이요, 20세 때에 처음으로 용문(龍門)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 뒤 얼마 안 되어서 임자옥사(壬子獄事 : 김직재의 옥사)라는 옥사에 걸려서 하마터면 목숨까지 보전하지 못할 뻔한 것도 한 시련이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해변(장곡동)으로 낙척하여 12년 동안이나 고초를 받은 것도 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만으로도 시련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괄(李适)의 반란으로 인하여 인조가 공주(公州)로 파천한 때 어가(御駕)를 모시고 풍진을 뒤집어썼고, 병자호란으로 말미암아 인조께서 또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할 때 역시 어가를 호송하여 풍설에 부대끼었다. 남한산성의 국난을 겨우 면하자마자 지성으로 봉양하려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버리는 망극한 일을 당했다. 그에게는 이렇게 사나운 운명의 마수가 쉴새없이 연거푸 꼬리를 물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는 꼿꼿했다. 그는 나라를 사랑했 고 민족을 사랑했고 서책도 사랑했지마는, 그 모든 것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담배를 피운 사람이었다.

 
대륙 서반구(西半球)의 남쪽 끝에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조그마한 나라가 있었다. 그 많은 미인 중에서도 뛰어난 미인 하나가 있었다. 그 미인의 이름은 담파고(談婆姑)라고 불렀다. 그 나라 여러 남자들은 서로 다투어서 담파고에게 사랑을 구하였다. 그러나 담파고는 어느 남자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거절해 버렸다.

 
어느 날 담파고를 짝사랑하는 숱한 남자 중에 한 남자가 담파고에게 최후의 하소연을 하였다. 그 남자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요 세력가인데다가, 또한 제일가는 미남자를 겸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라 남자들이 담뿍 담파고에게 정신이 쏠리듯이 그 나라 여자들이 담뿍 그 남자에게로 마음이 쏠렸던 것이다. 그러나 담파고가 여러 남자가 보내는 사랑을 박차버리듯이 그 남자도 여러 여자가 보내는 사랑을 박차버렸다. 오직 담파고 하나만이 그의 마음 속에 깊이 못박혀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담파고와 단둘이서 만나는 데 성공하였다.

 
"나는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남자요, 당신은 미남자의 아내 될 생각이 없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내로 삼는 미남자는 불행할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의 큰 세력가요, 당신은 큰 세력가의 아내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를 아내로 삼는 세력가는 불행할 것입니다."
그 남자는 세 가지 자랑을 앞세우고 아내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끝까지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다 싫고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든단 말이오?"
그 남자는 담파고에게 힐난을 하기 시작하였다. 담파고는 대답했다.
"하늘이 정한 연분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드는 남자이겠지요."
"그 연분은 어떻게 해야 생길까요?"
"하늘밖에는 만들 사람이 없겠지요. 나도 하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도 미남자니 부자니 세력가니 하는 것을 다 털어버리고 오직 연분을 기다리시오."
그 남자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백년의 가약을 정하는 데는 미(美)도 아니요, 부(富)도 아니요, 권(權)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혼인이라는 것이 매우 신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담파고가 우연히 병석에 눕게 되었다. 만가지 약이 소용이 없었다. 담파고가 비록 세상을 놀라게 하는 매력을 가졌지마는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삼고(三苦)를 해탈할 힘은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담파고의 병은 시시각각으로 더해갈 뿐이었다. 그 남자는 이 소문을 듣고 병중의 담파고를 찾았다. 꽃같던 얼굴은 마치 살을 도려낸 생선과 같고, 은반에 진주를 굴리듯 낭랑하던 음성은 마치 깨어진 퉁소 소리와 같았다. 분명 귀신의 형상이었다. 담파고가 남자를 바라보며,
"당신이 나를 아내로 삼았던들 분명히 불행한 미남자요, 불행한 부자요, 불행한 세력가였을 것이 아니오? 아무리 미남자요, 부자요, 세력가라도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오. 다만, 불행하다는 것만 원망하고 한탄하였을 것이요."
하고 그 남자에게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그 남자는 담파고의 병이 낫기를 빌면서 돌아섰다. 그 뒤 담파고는 필경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버렸다. 그 남자는 담파고의 죽음을 들었다. 그 남자는 어느 날 담파고의 무덤이 있는 산에 올라갔다. 바람소리, 물소리, 산새소리뿐이었다.

 
"천하 미인이 저 바람과 물과 새에 비하여 만분의 일에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로구나"
하고 담파고의 무덤 주위를 거닐었다. 해가 넘어가고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배가 고픈 것을 깨달았다. 먹을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담파고의 무덤 위에 이상한 풀이 있었다. 그 풀잎사귀에서 풍기는 향기가 구미를 돋우었다. 그 남자는 그 풀잎사귀를 한 잎 따먹었다. 그랬더니 즉시 배고픈 증세가 조금 덜해 가지고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깨끗해지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그 풀은 분명히 담파고의 넋이라 하여 상사초(想思草)라 하였고, 또 그 풀잎을 따먹으면 완연히 술을 마신 것 같다 하여 연주(煙酒)라고도 하였다. 그 상사초니 또는 연주니 하는 것이 지금의 담배인 것이다. 그 뒤로 이 담배가 세계 각국에 퍼지게 된 것이다.
역시 동반구(東半球)의 남쪽에 귀국(鬼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오직 미신을 신봉하기로 유명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몹시도 꺼리었다. 그래서 집안에 중한 환자가 생길 때는 죽기 전에 미리 산에나 들에 내다버리는 악풍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나라 공주가 병석에 눕게 되어 마침내 중태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국왕은 할 수 없이 공주를 내다가 산기슭에 버리게 하였다. 공주는 속절없이 까마귀와 까치의 밥이 되게 되었다. 그러나 천만뜻밖에도 공주는 내다버린 지 사흘 뒤에 살아서 돌아왔다. 공주의 얼굴은 도리어 화려해졌고 동작은 씩씩해졌다. 왕과 왕비는 물론이요, 이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놀랐다. 그래서 왕은 공주에게 살아 돌아오게 된 까닭을 물어보았다.
"네가 꼭 죽은 사람으로만 알았더니 다시 살아오니 반갑다.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왔는고?"
"참 이상한 일이옵니다. 맨 첫날 이상한 향기가 코에 들어오더니 정신이 났사옵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이상한 풀이 있는데 그 잎사귀에서 향기가 났나이다."
"그래서?"
"그 풀 밑에 엉금엉금 기어가 누웠습니다. 그랬더니 그 향기가 코에 들어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누웠더니 원기가 회복되어 몸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 풀이 분명히 죽을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알고 그대로 누웠더니 이렇게 병이 들기 전보다 정신이 더 명랑해지고 몸이 가뿐하게 되어 돌아왔습니다."
공주의 말을 듣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병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달려가서 그 이상한 풀의 향기를 마음껏 마시었다. 그들도 과연 병이 나았고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거뜬해졌던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고 서로 다투어 그 풀을 뽑아다가 집집마다 심게 되었다. 그러나 그 풀의 이름을 알 수 없으므로 반혼초(反魂草)라 지었다. 그 뜻은 죽게 되었던 공주가 살아 돌아오듯이 죽을 사람을 능히 살리는 풀이란 뜻인 것이다. 이 반혼초가 즉 담배인 것이다.
담배가 담파고의 전설로 보든지 또 이 공주의 일로 보든지 여신(女神)과 관련된 것이, 마치 중국의 우미인(虞美人)이 죽어서 우미인초(虞美人草)가 되고 양귀비(楊貴妃)가 죽어서 양귀비꽃(楊貴妃花)이 되었다는 전설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담배는 온 세계에 없는 곳이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점으로 보아 우미인초나 양귀비꽃으로는 발을 벗고도 따를 수 없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담배는 여자의 넋으로써 된 까닭에 동성이 되는 여자들보다 이성(異性)이 되는 남자가 많이 피우게 된다는 말도 그럴 듯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담배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데 대하여는, 사학가들 사이에서 그 연대를 약간 달리 말하는 이도 있으나, 사학가들의 견해와 국내 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을 종합하면 1608~1616년간에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국내 문헌들은 그 설명에서 모두 광해군대(光海君代)에 왜국(倭國)으로부터 들어왔다고 하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지봉(芝逢) 이수광(李 光)이 광해군 6년(1614)에 발간한 「지봉유설(芝逢類說)」에 보면,
"담배는 잎을 따서 폭건(暴乾)하여 불을 부치어 피운다. 병든 사람이 대통을 가지고 그 연기를 마신다. 한번 빨면 그 연기가 콧구멍으로부터 나온다."
고 하였고, 효종 4년(1653) 우리 나라에 표류되어 10여 년 동안이나 억류당하였다가 현종 7년(1666)에 탈출한 '하멜' 일행이 귀국하여 그 견문을 기록한 「조선국(朝鮮國)」 편에서.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좋아하며 아이들도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우며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일본으로부터 50~60년 전에 전래되었다."
고 기술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문헌인 저자 미상의 「연초기(煙草記)」에는,
"연초는 경장년대(慶長年代)에 처음 조선에서 유입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부하 군졸들이 흡연법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였다."
고 하였다. 이렇듯 담배의 전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인 견해는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담배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뒤에 담배를 피우는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에서 시비의 말이 허다했다. 첫째, 유명한 실학자 성호(星 ) 이익(李瀷)은 담배에 대하여 다섯 가지 이익과 열 가지 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 다섯 가지 이익이라는 것은,
. 가래침이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유익하고
. 비위가 거슬려 침이 흐를 때 유익하고
. 먹은 것이 잘 내리지 않고 오르내릴 때 유익하고
. 상처에 습기가 생겨 진물을 뺄 때 유익하고
. 겨울에 추위를 막을 때 유익하다
는 것이다. 그리고 열 가지의 해가 된다는 것은,
. 정신이 맑지 못한 것
. 눈과 귀의 총명이 감해지는 것
. 머리털이 빨리 희어지는 것
. 얼굴빛이 푸르러지는 것
. 이가 빨리 상해서 빠지는 것
. 몸이 약해지는 것
. 입의 냄새가 추악한 것
. 부질없이 돈을 낭비하는 것
. 까닭없이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
. 신령(神靈)과 사귈 수 없다는 것
등이다. 또 역시 학자로 유명한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은 담배가 3액(三厄) 중의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그 첫째 액은 두액(頭厄)이라는 것이니 우리 나라 사람이 망건을 쓰는 것이요, 둘째는 족액(足厄)이라는 것이니 중국 부녀자들이 발을 졸라매는 것이요, 셋째는 구액(口厄)이라는 것이니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 했다. 박지원도 이와 같이 담배 피우는 것을 3액으로 말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하였다.
그런데 담배에 대하여 가장 극성스럽게 반대한 사람은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었는데, 그는 장유의 장인이었다. 김상용이 담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반면에 장유는 담배를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그러므로 담배에 대해서는 김상용과 장유의 장인, 사위가 서로 적수가 되었다. 즉, 김상용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최초의 금연가(禁煙家)요, 장유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최초의 애연가(愛煙家)였다.
김상용과 장유 사이에 담배로 인해서 생긴 이야기가 많거니와 그 중에서도 탑전삽화(榻前 揷話)라는 것은 유명하다.
"그대는 어찌하여 요초(妖草)인 담배를 그렇게 사랑하는고? 그것은 분명히 밝지 못한 일이니 그렇게 사물에 어두워서 어찌 국사를 담당할 수 있을꼬?"
하는 말로서 상감 앞에서 힐책을 하였다. 장유는 이 말을 듣고,
"장인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영초(靈草)를 배척하십니까? 장인께서 만일 담배를 사랑하셨더라면 지금보다 더욱 명상(名相)이 되셨을 것입니다."
하는 말로써 응수를 하였다. 인조께서 이 모양을 보시고 껄껄 웃으시며,
"옹서의 다투는 말이 각각 일리가 있다."
하고 중재를 하였다. 그런데 김상용이 담배를 요초라 하여 반대한 것은 담배를 많이 피우면 술과 같이 취하여 사람을 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장유가 담배를 영초라 하여 칭찬한 것은 담배가 빈랑(檳 ) 같은 약성을 가졌다 하여 사람에게 유익하므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김상용이 요초라 한 것은 오직 도학자의 관찰이요, 장유가 영초라 한 것은 그가 의학에 밝으니만치 의학상으로 주장한 것이었다. 빈랑은 취한 것을 능히 깨게 하며, 깬 것을 능히 취하게 하고, 배고플 때 능히 시장하지 않도록 하며, 과식했을 때 능히 소화를 도와주는 것인데, 담배가 이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장유가 어전(御前)에서도 거리낌없이 한 대 피워 물고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담배를 피울 줄 모르고 있었다. 그때 한참 눈여겨보던 김상용은 마지못해 한 마디 건네었다.
"사부빈객(士夫賓客) 장유는 어전에서도 흡연하는가?"
따끔하게 사위를 나무랐다. 장유는 그 뜻을 깨닫고 담뱃대의 불을 껐다. 그러나 김상용은 다시 한번 한마디 했다.
"구용정(口容正)일세."
이것은 입의 모양을 바르게 가지라는 말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입을 삐죽이며 뻑뻑 소리를 내야 하니 이 모양이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유는 그 후부터 어전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후부터 존귀한 사람이나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풍습이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유는 이렇게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담배라는 이름도 그가 지은 것이었다. 담배는 전 세상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므로 그 명칭도 나라에 따라서 적지 아니하였다. 우선 일본에서는 '다바코', 중국에서는 '연초(煙草)', 우리 나라에서는 '남초(南草)'라 하였다. 남초라는 뜻은 맨 처음 남방에서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원래 담배의 본명은 담파고의 이름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 그러나 담파고 밖에도 '연주(煙酒)', '상사초(想思草)', '다바코', '연초', '남초', '신다(新茶)', '반혼초(反魂草)' 등 수십 가지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특히 담배라 하는 것은 장유가 지은 담배(痰排)에서 나온 것으로, 담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담배는 이렇게 이름만 많은 풀이 아니라 담배로 인하여 새 문화가 생기기까지 되었다. 즉, 담배 문학(文學), 담배 가요(歌謠), 담배 시(詩), 담배 설화(說話) 등이다. 담배 시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광사(李匡師)의 작품으로, 108귀의 오언(五言) 장편시가 있고, 담배 노래로는 남초탄(南草嘆)이라는 장편노래를 비롯하여 남영초탄(南靈草嘆), 남영초가(南靈 草家), 담바귀타령 등이 있다.
담배는 문예면(文藝面)으로만 장관이 아니요, 그보다 상업과 무역상으로도 귀중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유는 담배를 잘 피우는 것으로만 애연가가 아니라 담배 농사를 짓는데도 착실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장유는 뜨거운 햇볕이 내려쪼이는 담배밭에서 땀을 철철 흘리면서 순을 치기도 하고 누런 잎을 따기도 하였다. 때마침 지방관이 지나다가 그 광경을 보고 얼른 말에서 내려 인사를 한 뒤에 장유가 친히 담배농사를 짓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아니 대감께서 귀하신 처지로 어찌 손수 담배밭에 손질을 하십니까?"
"소위 대감이라는 것도 나라로 인해서 생긴 것인데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조정이나 담배밭이나 다를 것이 없지요."
"담배밭을 어찌 조정에 비하오리까?"
"조정이 이런 담배밭이나 벼를 심는 논이나 콩팥을 심는 밭이나 그런 농토가 아니고서는 조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 국가의 부력(富力)이란 농사를 잘 짓고 못 짓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니, 곡식 한 톨이나 나무 한 폭이라도 모두 국가의 부력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하물며 이 담배는 양생을 위하여 귀중한 영초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부력을 위하여도 귀중한 영초이지요. 세상사람들이 흔히 쌀만 많으면 부지인 줄 알지마는 그렇지 않소. 물론 쌀도 많이 있어야겠지만,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이 똑같이 많아야 비로소 치부(致富)를 할 수 있는 것이오. 담배는 약성(藥性)으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좋아하는 것이니만치 상품으로도 중요한 것이오. 국가를 위하여 부력을 증산하는데 왜 이렇게 중요한 담배를 범연히 하겠소. 또한 농사 짓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 조정에 서면 관원이 되고, 향토에 돌아오면 백성이 되는 것이니 백성으로서 소중한 농사를 어째서 돌보지 않겠소.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라고 말을 했다. 그 지방관은 장유의 이러한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장유는 이렇게 손수 담배농사를 지으며 여러 사람에게도 권장하였다. 그런데 장유는 담배를 이토록 사랑하지마는 담배를 피우지 못할 경우가 아홉 가지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 아홉 가지 피우지 못할 경우라는 것은,
. 임금 앞에서 피우지 말 것
. 관원 앞에서 피우지 말 것
. 어른 앞에서 피우지 말 것
. 부녀자는 피우지 말 것
. 병든 사람은 피우지 말 것
. 이른 아침에 피우지 말 것
. 잠자리에서 피우지 말 것
. 문에서 피우지 말 것
. 어린아이는 피우지 말 것
등이다. 이상 아홉 가지를 소위 구물흡(九勿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의와 위생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 장유의 묘는 시흥시 조남동 산1~5에 있음.  


최고관리자   admin@domain.com
서비스이용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무단수집거부
▲TOP
시흥문화원  |  대표 : 김영기  |  고유번호증 : 133-82-03832
주소 : 경기도 시흥시 연성로 13번길 3
Tel. : 031-317-0827  |  Fax. : 031-317-0828  |  E-mail : Kccf0827@hanmail.net

Copyright © 시흥문화원. All Rights Reserved.  admin